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(문단 편집) == 제1도서관 == [[기원전 3세기]]경, 신성한 장소에 [[인류]]의 [[지식]] 모두를 아우르려는 [[욕구]]에서 지어졌다. [[헬레니즘 시대]] 학문연구의 중심이었으며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잠시 번영하였다가 이후 쇠퇴하였다. 각지에서 초청된 학자 100여 명이 [[자연과학]], [[문헌학]]을 연구하고 강의하였다. [[기원전 300년]]경 [[프톨레마이오스 1세]]가 건립을 시작하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완성하였다. 귀족이나 명망 높은 학자라든가 특권층이 제1도서관의 주 이용자. 브루케이온(Bruchium, Brucheion), 즉 왕실 지구에 소재한 제1도서관은 학문 연구소의 기능도 했다.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100여 명의 교수가 배치되어 있었고, 오늘날의 대학 캠퍼스처럼 정원, 공용식당, 열람실, 강의실, 회의실 등의 시설이 있었다. [[중국]]을 비롯한 [[아시아]]의 여러 서적들과 [[중동]], [[유럽]]의 여러가지 고서들, 연구 자료,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[[기원전 48년]] [[율리우스 카이사르]]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을 때 로마 병사들의 [[방화]]로 큰 손실을 입었다. 이때 도서관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고 기원후 [[3세기]]까지도 로마 치하에서 존속하였지만, 3세기 초 [[카라칼라]]의 무세이온 탄압으로 알렉산드리아 교육의 중심지는 이하의 세라페이온으로 이동했다. 그래도 기원후 [[260년대]]까지는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으나, 무세이온과 도서관은 [[270년대]], 특히 [[아우렐리아누스]] 황제가 [[팔미라]]의 [[제노비아]]로부터 알렉산드리아를 빼앗은 [[272년]] 전후, 또는 늦어도 [[3세기]] 말[* 특히 [[297년]] [[디오클레티아누스]]의 알렉산드리아 포위 전후]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. [[4세기]]나 [[5세기]]에도 '무세이온'이라는 장소에 대한 언급은 문헌에 드물게 나타나지만 이는 다른 무세이온이나 다른 어딘가에 일시적으로 재건된 무세이온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